오랜 기다림 끝에 샤넬이 파리의 상징적인 그랑 팔레로 돌아왔습니다. 약 3년 7개월간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가브리엘 샤넬'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정문과 함께 말이죠. 이곳에서 펼쳐진 2025년 봄/여름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은 단순한 패션쇼를 넘어, 샤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한 특별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가 떠난 후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가 전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죠.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공기가 감도는 쇼 현장에서는 샤넬 고유의 유산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변화의 중심에서 샤넬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컬렉션의 면면을 통해 그 섬세한 메시지를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샤넬 컬렉션의 핵심 주제는 바로 '비상(飛翔)'이었습니다. 사회의 거추장스러운 시선과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오른 여성들에게 바치는 찬사였죠. 가브리엘 샤넬이 재봉사에게 선물 받았던 새장 일화에서 영감을 얻어, 쇼장 중앙에는 거대한 개방형 새장이 설치되었습니다. 이는 1991년 바네사 파라디가 등장했던 아이코닉한 향수 광고를 떠올리게 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인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구였던 작가 콜레트, 1920년대의 가르손느 스타일을 이끈 여성들, 그리고 경계를 넘어선 여성 비행사들까지, 시대를 앞서간 강인하고 자유로운 여성들의 정신이 컬렉션 전반에 녹아 있었습니다. 옷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것을 넘어, 해방과 자기표현의 도구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버지니 비아르의 갑작스러운 퇴장 이후 샤넬의 행보에 많은 이목이 쏠렸습니다. 이번 컬렉션은 특정 디렉터의 이름 대신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가 전면에 나서 하우스의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섬세한 변화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칼 라거펠트 시대의 대담함과 위트, 그리고 버지니 비아르가 추구했던 가벼움과 여성스러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엿보였죠. 스튜디오는 샤넬의 방대한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되,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샤넬다움'을 유지했습니다. 물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높지만, 이번 컬렉션은 샤넬 디자인 팀의 저력과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증명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과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브랜드의 정수를 담아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컬렉션 전반을 지배한 키워드는 단연 '가벼움'과 '움직임'이었습니다. 샤넬의 상징인 트위드 수트는 깃털 장식이나 섬세한 자수와 만나 한결 경쾌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하늘하늘한 쉬폰 케이프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때로는 데님 팬츠와 매치되어 의외의 캐주얼한 매력을 선사했습니다. 데님 점프수트나 와이드 팬츠는 활동성을 강조하며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고, 시스루 소재와 섬세한 레이스는 은은한 노출을 통해 '몸의 자유'라는 코코 샤넬의 철학을 반영했습니다. 여기에 1920년대 여성 비행사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듯한 에비에이터 재킷과 플라이트 수트 디테일이 더해져, 우아함 속에 숨겨진 강인함과 모험 정신을 표현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유연하고 여유로운 실루엣이 주를 이루며 봄, 여름 시즌의 산뜻함을 담아냈습니다.
샤넬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언제나 섬세한 디테일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특히 '깃털' 모티브가 두드러졌습니다. 실제 깃털 장식뿐만 아니라 깃털 프린트가 코트나 드레스에 적용되어 걸을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며 비상의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옷 곳곳에 수놓인 정교한 자수와 반짝이는 시퀸 장식은 컬렉션에 화려함과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서 강조되었던 리본과 벨트 장식 역시 레디 투 웨어에서도 중요한 포인트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액세서리에서는 샤넬의 아이코닉한 투톤 펌프스를 재해석한 플랫폼 스니커즈가 눈길을 끌었으며, 새롭게 선보인 '샤넬 25 백'은 퀼팅, 체인 스트랩 등 하우스 코드를 현대적이고 실용적으로 담아내며 주목해야 할 아이템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모여 샤넬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컬렉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했습니다. '색에 대한 찬가(An Ode to Color)'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동명의 메이크업 컬렉션처럼, 이번 레디 투 웨어 컬렉션 역시 다채로운 색감의 향연을 보여주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샤넬의 클래식한 블랙 앤 화이트는 물론, 봄/여름 시즌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파스텔 톤, 예를 들어 핑크, 베이비 블루 등이 사용되어 로맨틱하고 서정적인 무드를 연출했습니다. 또한, 라거펠트 시대를 연상시키는 대담하고 생동감 넘치는 프린트나 햇살을 머금은 듯한 옐로우, 오렌지 같은 따뜻한 색조가 컬렉션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색상들은 가벼운 소재, 유연한 실루엣과 만나 '비상'이라는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희망과 자유를 느끼게 했습니다.
샤넬의 2025 S/S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공백이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도 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디자인 역량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쇼였습니다. 그랑 팔레로의 귀환, '비상'이라는 명확한 주제, 그리고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의 섬세한 해석이 어우러져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가벼움, 자유, 움직임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샤넬 고유의 코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었죠. 비록 과도기적 컬렉션일 수 있지만, 샤넬이라는 이름이 지닌 힘과 그 안에 축적된 창의적인 유산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비상을 보여줄지, 패션계의 관심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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